이 영화는 짐승같은 소년들, 짐승같이 포악하다라기 보다는 짐승같이 원시적인 소년들에게 고깃덩어리처럼 난자당하고 농락당한 소녀가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이야기 이다.
하지만 당연히, 여기서 왜 당연히란 말이 당연히 내 머릿속에서 떠올랐는지 회의가 들지만, 정말 당연히 현실은 너무 어려웠다. 소녀가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학교와 거처를 옮겨야하며, 왜 혼자 병원에 가서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으며 고통스런 치료를 받아야 하며, 왜 몸의 상처는 커녕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지도 않고 오히려 벼랑끝으로 몰고가는지,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눈망울은 실제 어떤 십대 소년의 눈망울이었다. 한 소녀가 아닌 여러 소녀들의 눈을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백린탄에 맞아 죽음보다 더 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민간인들의 사진들이, 검열을 거쳐도 지나치게 끔찍한 모습으로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 단연코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사람이 그 백린탄의 파편에 맞으면 살갖이 타들어가고, 그 고통스런 타들어감은 물로도 꺼지지 않아, 피부에 닿는 순간 살을 도려내야 하는 아주 무시무시한 화학무기이다. 나는 오늘 하루 다이어트를 위해 저녁을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저 곳에서는 3살짜리 어린아이의 피부를 산채로 도려내고 있다. 그마저도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현실에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어둡고 추악한 현실도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피하고, 금새 잊고 마는 일들도 일부러 더 오래 기억하고, 끊임없이 자극하곤 했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하고 남들보다 몇배는 더 강한 공감능력을 가진 나에겐 그런 끔찍한 사건과 현실들은 남들보다 몇배는 더 무겁게 짊어지어야 할 무게로 내 어깨에 내리앉았다.
영화나 소설과 같은 픽션보다 때론 차라리 영화였으면 하는 더 잔혹한 현실들을 보게 되고 알게 되면 짧게는 며칠, 몇주 길게는 몇달동안 악몽과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유난히 이런 아픈 현실에 대해 기억력 또한 좋아서 몇달이 지나고 몇년이 지나도 장면장면 생생하게 뇌의 구석구석 남아있다.
아마 내가 이런 사회의 비극적인 문제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단지 이런 ‘내 문제’가 아닌 지극히 ‘남의’ 문제들에 대해 탁상공론을 하며, 나 이 정도로 세상문제에 관심 있소~ 란 코스프레를 하기 위함이고, 정작 나 자신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있어서는 모니터 너머로는 한 발짝도 내딛지 않는 비겁한 방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사회와, 자본주의에 찌든 비인간적인 권력자들에게서 나는 악취에 비위상해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의 악취에는 외면하고 무감각해지고 있다. 내 몸에서 나는 악취가 가장 지독한지도 모르면서 말이다.